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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 찬반토론 : 임성호
관리자
200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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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에 관한 입장
임성호(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폐지하자는 방안이 오늘날 사회 일각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한편으로 볼 때, 이는 정당들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정당이란 말엔 강한 부정적 뉘앙스가 붙어있고, 심지어 국회무용론에 더해 정당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정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세력에서 새 희망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당 지도자와 정당 활동가들의 큰 반성이 필요하다.
사실,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추천은 고비용 정치, 비리, 정당에 의한 집단주의적 비민주성, 특히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군림에 의한 지방자치 훼손 등의 부작용을 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한 정당정치를 활성화시켜 한다는 당위적 대명제를 고려할 때 정당공천의 폐지 방안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또한 정당활동의 지나친 규제는 개인적 정치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누른다는 당위적 문제점도 경시할 수 없다. 정당공천으로 인한 현실적 부작용의 가능성은 후술할 정당정치의 개혁을 통해 줄여나가야지, 부작용이 있으니 아예 없애자고 한다면 더 큰 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정당공천을 금지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당이 후보자를 낼 수 없다면 기초지방선거는 공적(公的)이기보다는 사적(私的) 성격이 강한 사회조직세력 혹은 지방토호세력에 의해 지배될 위험성이 크다. 이들은 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넓은 공익보다 좁은 사익에 치우치기 쉽고 이념적 편향성을 강하게 보이기 쉽다. 지역 언론의 영향력도 과도하게 커지면서 편파성, 상업적 센세이셔널리즘 등 언론의 병폐가 두드러질 수 있다. 반면, 정당이 표방하는(혹은 현실이익을 위해 표방할 수밖에 없는) 공적 비전은 기초지방선거와 선거 후 기초지방행정이 너무 사적 이익이나 이념성에 의해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도록 해 줄 수 있다.
둘째, 정당의 배제는 또한 지방이기주의 혹은 소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방이익 간 조정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정당은 지방적 관점만 취할 수 없고 전국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지방이기주의가 너무 심해지는 것에 제동을 걸 수 있고 상충되는 입장의 지방들 간의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이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한다면 정당이 지방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 극심한 지방이기주의가 퍼지는 가운데 각종 정책현안을 놓고 지방 간 조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또한 정당의 후보자추천 폐지는 지자체장이든 의원이든 당선자들을 뿔뿔이 개인으로만 존재하도록 해 그들의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고 행정에 익숙한 관료에 강력한 견제를 가하기 힘들게 할 것이다. 행정 관료는 속성상 효율성과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지방 기득세력과 친밀하게 연계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출직 장이나 의원이 행정 관료에 휘둘릴 경우 민주성, 다양성, 개방성, 혁신성 등의 중요한 가치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훼손될 위험성이 있다.
넷째, 정당이 후보를 추천하지 못한다면 선거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 더 낮아지고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 유인이 더 약해질 것이므로 투표율이 더욱 떨어질 것이다. 투표율이 모든 계층에 걸쳐 골고루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저소득층이나 젊은 세대, 여성 등 평소 정치관심도가 높지 않은 계층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투표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점이 우려를 자아낸다.
다섯째, 여성이거나 전문 영역에서 성공한 참신한 인물이지만 특정 지역에서 인지도나 주민과의 친밀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경우, 정당추천 없이 출마할 경우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점도 들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컨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 정당의 후보자추천 폐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당 지도부가 하향식으로 공천을 정하기보다는 민주적으로 후보자를 추천하는 상향식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차원에서 정당정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둠으로써,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의 부작용을 비롯한 정당정치의 각종 부작용을 경감시키도록 해야 한다.
정당정치 변화의 방향
정당의 위기는 곧 한국 전체의 위기를 뜻한다. 정당이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누가 정당을 대신해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정당의 이익대변 기능을 언론, 이익단체, 개별 정치인, 일반 시민에게만 맡기기에 너무 한계가 크다. 또한 정당의 이익조정 기능을 행정부, 사법부, 또 개별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경우 민주적 거버넌스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대안적 주체를 찾기가 요원하므로, 성급히 정당정치를 더 위축시키기보다는 위기에 빠진 정당들과 정당체제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정당에 기대되는 이익대변과 이익조정이라는 순기능을 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과 정당체제의 재활성화를 기존의 집단주의적 경직성의 강화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당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보다 민주적이고 유연하게 정당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작금의 정당 간 극한 대립과 그로 인한 교착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원들이 자율성 있게 활동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 간 대화도 하기 전에 당 지도부가 당론을 미리 설정해 강제하는 관행을 버리게 함으로써, 정치과정 전반에서 정당 간에 합리적 대화, 숙의,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유연한 정당체제의 복원, 그것을 통한 합리적 정당 간 대화와 합의, 그리고 그에 따른 이익대변과 이익조정 기능의 실현이라는 대명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물론 정당정치에 갈등과 대립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이익과 생각을 추구하다 보면 의견 충돌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경쟁 정당들 간의 적절한 긴장과 상호비판은 한편으로는 불공정한 담합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횡포를 막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정당들 간의 대립은 건전한 이성적 차원에서 정책내용을 놓고 진행되기보다는 감정적 차원에서 상대방을 전면 부정하는 선악대결로 치닫고 있다. 진지한 대화를 통한 합리적 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당 간 경직된 집단주의적 대립은 국가 거버넌스 전반을 교착에 빠뜨리고 나아가 한국 정치체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적대감, 무력감, 불신감,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한다.
지구당 부활에 관한 첨언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이 공천을 할 경우 각 지방의 자율성이 훼손되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지구당 부활이 바람직해 보인다. 지구당이 활성화됨으로써 지나친 중앙으로의 쏠림과 지역 자율성 훼손을 막을 수 있고,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에 수반되는 부작용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과 지구당 부활은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04년 지구당을 폐지시킬 때 고비용 정치, 현역의원의 사조직화 등 여러 병폐가 그 근거로 지적되었지만, 그 후 우리의 경험은 지구당 폐지를 계속 정당화할 만하지 않다. 지구당을 대신하는 당원협의회의 운영 경험도 못지않은 여러 문제점과 편법을 노정하고 있다. 이런 현실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하고 유연한 정당정치를 뿌리 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감안할 때, 진성당원 모집이 현실상 쉽지 않겠지만 인위적으로 지구당 폐지를 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구당은 중앙당의 독주를 막고 정치체제 전반에 걸쳐 권력이 분산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름대로 독립적 위상을 가진 지구당이 없을 경우 지역에 뿌리를 둔 당 액티비스트나 당 지지자들은 중앙당에 직접적으로 예속될 수 있다. 중앙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끄는 일방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앙당과 지구당 간에 권력을 적절히 분산시킴으로써 정당이 지나친 집단주의적 경직성을 벗고 보다 민주적인 정당운영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구당이 상존함으로써 선거기간은 물론 비(非)선거기간 동안 지방정치가 너무 이념적, 지역적, 계층적 편향이 심한 사회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구당은 정당조직이기 때문에 그러한 특정의 편향성만 보일 수는 없고 가능한 한 사회전체를 위한 공공성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공공성 지향이 슬로건에 머문다 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근래 지역수준에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그러한 시민사회가 지역의 정당조직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서로를 보완해줌으로써 사적 이익과 공적 대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적극적 생활정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당조직이 경직적 수직관계로 운영되어선 곤란하다. 당 액티비스트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상향식 풀뿌리 조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풀뿌리 조직으로서의 지구당은 전통적 의미의 계서적 조직이기보다는 유연하게 작동하고 변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정당이 유권자와 보다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경로로 기능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